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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사 금동귀면 출토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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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 작성일18-09-05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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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쪽 동대봉산에 있는 황용사 절터에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귀면이 출토됐다. 신라시대 금동귀면이 출토된 것은 국내 첫 사례다. 이번에 발굴된 금동귀면은 금속판의 일부를 도려내는 투조 기법으로 만든 것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가 문화재청과 함께 진행하는 '중요 폐사지 발굴조사 사업'이 거둔 성과다. 발굴된 금동귀면은 높이 15cm로 성인의 손바닥에 딱 들어가는 크기라고 한다. 입에는 고리가 달렸고 입체감이 돋보이는 귀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발굴팀은 "국내에 유사한 사례가 없어 지금은 용도를 알 수 없지만 장식품일 수도 있고, 고리에 무언가를 걸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황용사(黃龍寺)는 경주 도심의 신라 최대 사찰인 황룡사(皇龍寺)와는 다른 절이다. 불국사고금역대기(佛國寺古今歷代記)에 선덕여왕 2년(633)에 황둔사(黃芚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됐고 소성왕 때 황용사로 사찰 명칭이 바뀌었다고 전한다. 황용사에서 출토된 금동귀면은 출토지 인근 탑을 8~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는 미술사학계의 추정에 근거해 비슷한 시기에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귀면 장식은 고대시대부터 다양하게 쓰여왔다. 서양에서도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귀면장식은 흔하게 발견됐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주로 절터의 기와 문양에서 발견됐으며 당연히 주술적인 의미로 벽사적( 邪的) 기능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굴된 금동귀면은 국내에서 발굴된 사례가 없다고 하니 보물급으로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경주에는 아직 수많은 문화재들이 땅밑에 묻혀 있다. 문화재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개념이 확보되기 전 도굴된 뒤 해외로 밀반출되기도 했고 무지로 인해 멸실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재보호법이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고 전문가들에 의해 비교적 엄중하게 관리되고 있으니 더 이상의 누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주가 2천년 역사를 가진 고도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이번에 발굴된 금동귀면과 같은 귀한 문화재들이 더 많이 세상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 고대 신라의 우수했던 문화와 역사를 증명해낼 수 있다. 경주와 경쟁하는 세계의 역사도시들은 대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들이 잘 보존되고 다양한 유물을 보존하고 있다.

    금동귀면은 그 중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이미 발굴돼 공개되고 있는 문화재들이 그보다 훨씬 더 우수하고 귀한 것들이라 하더라도 금동귀면과 같은 작은 것들도 제대로 발굴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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