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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6·25 전쟁영웅 한신 장군, 안강전투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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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 작성일20-06-24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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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를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에게 한국동란을 어떻게 설명할까? 6·25 전쟁은 1950년 6월25일 새벽 오랫동안 준비를 해온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일어난 비극이다. 6·25 전쟁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최초의 현대전이자 마지막이 되어야 할 전쟁이다. 2020년 오늘, 분명 전쟁은 오래 전에 멈춘 과거지만, 남북 분단으로 인한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잊어선 안 될 그날의 역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을 체결하게 되지만 남과 북의 갈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현재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들은 850만 명에 이르고 있다. 전쟁 후에도 수없이 도발해 군인과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제2차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 도발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도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해 국민들을 공포로 몰고 가고 있다.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전쟁영웅들 가운데 한신 장군이 공이 큰 경주 안강전투를 빼놓을 수 없다. 낙동강 방어선 오른쪽 안강·기계 전투는 인민군 2개 사단과 1개 유격대 공격을 육해공군 합동 작전을 화력의 통합으로 성공시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신 장군은 특수임무부대를 적시적절하게 편성하여 적 위협지역에 신속한 투입으로 경주 점령에 이어 부산으로의 신속한 진출을 하고자 했던 인민군제2군단의 작전의도를 봉쇄함과 아울러 국군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한신 장군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수도사단 1연대장으로서 최초 의정부전투를 시작으로 한강방어선전투, 진천전투, 안강·기계 전투, 38선 북진작전, 대관령전투 등 수많은 격전지에서 명성을 떨쳤다. 낙동강 최후방어선의 요충지였던 안강·기계지역에서는 철수명령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여 북한군 12사단의 공세를 저지함의로서 국군의 방어선 유지와 반격작전 여건 조성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또한 중공군의 춘계공세가 한창이던 1951년5월22일 동해안의 전략적 요지인 대관령전투에서는 1개 사단 규모의 중공군과 이틀간 처절한 사투 끝에 격퇴함으로써 중공군의 남하는 저지하고 전세를 역전시켰다. 6·25 전쟁이후에는 수도사단장, 6군단장, 1군사령관, 합참의장 등의 요직을 맡아 사병복지와 강군육성에 헌신했다.
 
하지만 6·25 전쟁은 끝났지만,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이 평화가 지켜지고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날의 아픔을 기억할 때 더 나은 미래가 있지 않을까. 어쨌든 한신 장군의 사병을 잘 먹이고 잘 입히며 잘 재우는 사병복지의 구현과 이를 통한 교육훈련 제일주의를 실현함으로서 군의 기강확립과 강군육성 헌신이 가슴에 와 닿는다. 강군 육성만이 6,25 전쟁으로 산화한 영웅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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