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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신뢰를 가벼이 여기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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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 작성일08-10-3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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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화제의 중심이 된 이회창, 김용철, 그리고 김경준 씨는 이력에서 서로 많이 다르다. 그러나 그들에겐 뚜렷한 공통점이 있으니, 신뢰를 저버린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들을 평가할 때는 그 점이 결정적 중요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신뢰가 인류 사회와 문명을 낳은 힘이기 때문이다.

신뢰를 깨뜨린 행위들은 아주 나쁘다. 그것들은 우리 사회의 바탕을 흔든다. 그렇게 심중한 폐해에 비기면,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들은 아주 약하다.

보편적으로 인정된 원리와 실정법의 규정을 어기고 가장 신성한 종류의 신뢰를 깨뜨린  행위는 어지간한 명분으로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이다. 실은 모든 생명체들이 그러하다. 이기적이므로, 우리는 경쟁한다.

그러나 경쟁만하면, 큰 이익을 놓치게 된다. 협력하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은 본질적으로 비 영합경기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들이 나름으로 협력하면서 살아간다. 공생과 분업은 협력의 대표적 형태들이다.

협력을 통해서 보다 큰 이익을 누린 개체들이 살아남으므로, 모든 생명체들은 협력적 특질을 지니도록 진화했다. 사람도 물론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경쟁하면서도 협력한다. 큰 사회를 이루어 살므로, 사람은 특히 협력적이다. 우리는 ‘협력적 동물’로 태어났다.

협력은 신뢰에 바탕을 둔다. 신뢰가 없으면, 애초에 협력이 이루어질 수 없다. 즉 신뢰는 사회의 가장 근본적 바탕이다.

불행하게도, 협력에는 비용이 든다. 그래서 그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다른 개체들의 협력에서 나온 이익을 함께 누리려는 이탈자들과 무임승차자들이 나온다.

신뢰를 저버리는 사람들이 사회에 근본적 해악을 끼치는 까닭이 바로 거기 있다. 우리가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에 대해 그리도 큰 분노를 느끼는 것은 바로 그런 사정 때문이다. 그런 분노가 정의감의 핵심이다.

이처럼 중요한 신뢰가 사회에 쌓이도록 해서 번영으로 가는 길은 간단하다. 신뢰를 저버린 사람들이 잘되는 경우가 드물도록 하는 것이다. 신뢰를 저버린 사람들이 오히려 잘살면, 신뢰가 쌓일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런 처방을 실제로 따르는 것은 쉽지 않다. 이탈자들을 벌하고 무임승치자들을 꾸짖는 일에는 아주 큰 비용이 든다. 그래서 그런 징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아주 적고 대부분 무임승차자들이 된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 신뢰를 저버린 사람들을 벌하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다. 그저 우리가 타고 태어난 정의감에 따라 판단하고 그런 판단대로 실행 하면 되는 것이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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