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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병과 무명용사의 영령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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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 작성일12-06-2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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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미명을 틈타 남침을 감행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하를 계속, 국토를 유린했다.

예상 밖의 전세에 고무된 김일성은 8.15이전에 부산까지 점령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전쟁을 독려했다. 그해 8월 국군은 대구와 포항, 그리고 경남의 마산, 창녕, 진주를 전선으로 하는 낙동강전선을 구축, 배수의 진을 치고 적과 대항했다.

저 유명한 다부동전투와 포항전투는 낙동강전선이 무너지면 한반도는 북한의 지배로 넘어간다는 백척간두의 마지노선이었다. 낙동강전선으로 강물이 붉게 물들고 전우의 시체가 쌓여가는 동안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고 마침내 전세를 뒤집는 전기를 마련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는 군가도 그 무렵에 나와 눈물로 부르며 반격에 나선 것이다 낙동강전투는 한국전사에 길이 남을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는 수많은 학도병과 군번없는 무명용사가 참전했다. 국토의 90%가 유린당한 상황에서 한가하게 피난생활로 급급하기엔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여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학도병을 지원, 낙동강전선에 투입됐고 군번없이 전투에 임했다.

여기에는 소년병도 적지 않았다. 통계로는 2만5천여명의 학도병이 전투에 참가해 2,500여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경북지역에는 지금도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고 이들 무명용사와 학도병을 추모하는 시설이 있다.

전쟁발발 62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그때의 참혹했던 전쟁을 잊고 종북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름없이 청춘을 조국을 위해 희생한 그들이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면 어떤 생각을 가질까.

우리가 아픈 역사를 기념하는 것은 그날을 통해 다시는 그런 비극을 막자는 의미이다. 이제는 학도병의 참전을 재조명하고 우리의 안보의식을 다잡을 때이다. 그것이 학도병과 무명용사의 희생에 보답하는 것이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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