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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즐겼던 신라 왕족 여성`, 금동관·금귀걸이·팔찌 등 초호화 장신구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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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재 작성일20-12-0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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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에서 발견된 금귀걸이 출토 모습.사진제공=문화재청   
[경북신문=장성재기자] 경주 황남대총과 천마총 같은 신라시대 최상위 계층 무덤에서만 확인됐던 초호화 장신구들이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에서 쏟아져 나왔다. 특히 왕족 여성으로 추정되는 주인공의 무덤에서 당시 남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바둑돌 수백점이 출토돼 신라의 남여관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기대되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 대해서 정밀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지난 11월 발굴조사 과정에서 ▲무덤 주인공이 착장한 금동관 1점, 금드리개 1쌍, 금귀걸이 1쌍, 가슴걸이 1식, 금·은 팔찌 12점, 금·은 반지 10점, 은허리띠 장식 1점 등 장신구 조합, ▲비단벌레 딱지날개로 제작된 금동 장식 수십 점, ▲돌절구‧공이, ▲바둑돌 200여 점, ▲운모 50여 점 등이 한꺼번에 출토됐다.  
                      ↑↑ 44호 돌무지덧널무덤의 주인공이 착장한 장신구들. 사진제공=문화재청   
44호 돌무지덧널무덤의 주인공이 착장한 장신구들의 조합은 전형적인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나오는 장신구 양식들이다. 특히, 가슴걸이는 남색 유리구슬과 달개(금관 따위에 매달아 반짝거리도록 한 얇은 쇠붙이 장식)가 달린 금구슬, 은구슬을 4줄로 엮어 곱은옥을 매달았는데 이러한 형태는 황남대총이나 천마총 같은 최상위 계층 무덤에서만 확인됐던 디자인이다.  
장신구의 구성(조합상)과 재질 등을 고려했을 때, 44호의 주인공은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 축조기의 최상층(왕족)으로 추정되며, 장식대도(꾸밈을 한 큰 칼)가 아닌 은장식 도자(작은 손 칼)를 지닌 것으로 보아 여성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사진제공=문화재청   
출토유물을 기준으로 한 피장자의 키는 약 150㎝ 전후로 추정되는데 금동관, 귀걸이, 팔찌, 허리띠 장식 등 장신구의 크기가 전반적으로 작은 점도 피장자가 여성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장신구 크기가 작은 점은 기존 조사 사례 중 금령총과 유사하다.  
 44호 돌무지덧널무덤의 축조연대는 출토된 토기, 금귀걸이나 금팔찌의 형태로 보아 금관총 출토유물과 유사한 점으로 비추어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 비단벌레 금동장식과 재현품. 사진제공=문화재청   
또다른 주목할만한 유물은 '비단벌레 장식'이다. 주인공 머리맡에 마련된 부장궤(부장품 상자) 상부에서 수십 점이 확인되었다. 비단벌레의 딱지날개 2매를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앞뒤판 둘레를 금동판으로 고정해 만든 장식이다. 크기는 가로‧세로 1.6×3.0cm에 두께는 2㎜정도 소형이며, 신라 고분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바가 없는 형태와 크기의 장식이다.  
비단벌레 장식은 기존 신라 고분에서도 황남대총 남분, 금관총, 계림로 14호 등 최상급 무덤에서만 출토된 바 있어 이번 44호 피장자의 위계를 상징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유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비단벌레 장식은 모두 마구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번 비단벌레 장식도 안장이나 장니(말다래)에 매달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 돌절구와 공이. 사진제공=문화재청   
아울러 '돌절구와 공이'는 주인공 머리맡 부장궤 안 철솥 바로 옆에서 함께 확인됐다. 돌절구는 바닥이 평평하고 세로로 긴 형태이며, 화강암을 연마해 위쪽에 얕은 함몰부를 만들었다. 돌절구의 크기(높이 13.5cm, 폭 11.5cm)와 함몰부의 용량(약 60ml)으로 보아 곡물을 빻는 실질적인 용도라기 보다는 상징적 의미로 부장됐을 수도 있고, 약제를 조제하는데 사용한 약용 절구(현대의 막자사발과 같은 용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사례는 황남대총 남분에서 돌절구·공이 1묶음, 서봉총에서 공이 1점이 확인된 바 있다.  
                      ↑↑ 바둑돌 출토 모습. 사진제공=문화재청   
'바둑돌'은 피장자 발치 아래에 부장된 토기군 사이에 대략 200여 점이 모여진 상태로 확인됐다. 크기는 지름 1~2㎝, 두께 0.5㎝ 내외이고 평균적으로 1.5㎝ 정도의 것이 가장 많다. 색깔은 크게 흑색, 백색, 회색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인공적으로 가공한 흔적이 없어 자연석을 그대로 채취해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도 신라시대 바둑돌은 황남대총 남분(243점), 천마총(350점), 금관총(200여점), 서봉총(2점) 등 최상위 등급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만 출토된 바 있다.  
이후 시기로 넘어가면 7세기대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인 용강동 6호분(170점)에서도 확인되었고, 분황사지에서는 가로·세로 15줄이 그어진 바둑판 모양의 전돌이 출토되기도 했다.  
                      ↑↑ 쪽샘지구 44호분 발굴조사 현장사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효성왕(재위 737∼742)대 기록에 효성왕이 바둑을 뒀다는 내용과 신라 사람들이 바둑을 잘 둔다는 내용 등이 확인된다. 이번 바둑돌은 기록에 전하는 신라인들의 바둑문화에 대한 실물 근거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그동안 바둑돌이 출토된 무덤의 피장자는 모두 남성으로 추정돼 당시 바둑이 남자의 전유물로 이해되기도 했지만, 이번 피장자는 왕족 여성으로 추정되고 있어 바둑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자료로도 기대된다.  
2014년부터 진행한 이번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분 발굴조사는 올해로 7년차이고, 현재 매장주체부 유물 노출까지 진행됐다. 그동안 호석 주변에서 행해진 제사흔적, 봉분 성토방식, 적석부 구조와 축조방식, 다양한 지점에서의 의례행위 등이 확인됐다. 이를 통해 중대형 적석목곽묘의 구조와 축조방식을 복원할 수 있는 다양한 근거자료를 확보했고, 이번에 발굴된 유물을 통해서는 당대 신라 최고 지배층 사회의 장묘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 대릉원 일원 주요 고분 및 44호분 분포도. 자료제공=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앞으로의 조사에서는 부장궤에 겹겹이 쌓인 상태로 출토된 다양한 유물에 대한 정밀한 조사와 분석을 시도할 것"이며, 무덤의 하부구조와 호석, 적석부에 대한 해체조사를 통해 고분 전체의 구조와 축조과정을 완벽히 복원해 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내외 연구기관과의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경주 쪽샘지구 44호 적석목곽묘의 학술조사에 있어서 철저한 고증과 학제 간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장성재   blowpa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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