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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없이 살던 평화로운 마을… 감포읍의 관문마을 `전촌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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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성일20-12-0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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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촌2리 전경.   
[경북신문=김영식기자] 감포읍 전촌(典村)2리는 솔밭해변으로 유명하다. 과거 전촌해수욕장으로 불리던 솔밭해변은 해변에서 길 하나를 건너 사철 푸른 소나무숲이 매력적으로 펼쳐져 캠핑장소로 각광을 받아왔다. 이 솔밭은 마을 주민이 조성한 인공림이다. 소나무 한 그루를 심는데 보리쌀 1말 값이 들었다고 전한다. 과거에는 약 1000 그루가 자라 대낮에 지나가도 하늘이 보이지 않아 어둡다고 여길 정도로 울창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재선충 등의 병해와 태풍 피해를 겪으면서 지금은 약 4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 최교식 이장(오른쪽) 이장과 김종식 해마을지도자(가운데)가 마을 주민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솔밭해변을 낀 전촌2리는 장진마을과 새마을 등 2개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다. 장진마을은 이 마을을 김행남이 처음 개척할 때 긴 갈대밭뿐이었다고 해서 장진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새마을은 전촌초등학교가 있는 마을로 다른 마을보다 늦게 형성됐다고 해서 새마을, 새마실이라고 불렀다.

                      ↑↑ 하늘에서 내려다본 장진항의 아름다운 모습.   

  전촌2리는 110가구에 12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의 약 60%가 어업에 종사하면서 낚싯배, 소형 어선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낚싯배와 소형 고기잡이배는 약 30여척에 이른다. 이밖에도 숙박업소가 8개, 식당도 다수가 있어 인근 마을에 비해 관광객을 수용하기에 적합하도록 발전해 왔다.

  새마을에 있는 전촌초등학교는 1922년 일제강점기에 개교해 2009년에 폐교됐다. 일제강점기에는 감포5리의 감포초등학교가 일본인들만 수용해 감포읍과 양북면의 학생들이 이 학교에서 수학했다. 폐교가 되기 전 학교를 끼고 있던 전촌2리는 문구점, 구멍가게, 낚시점 등이 있어 매우 번화했다.

                      ↑↑ 전촌2리의 보물과도 같은 솔밭.   

  전촌2리는 지금도 경주와 감포를 잇는 간선도로변에 있어 감포읍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경감로가 생기면서 새로 큰길이 뚫렸지만 아직도 감포를 찾는 이들은 이 마을을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새마을에서 장진마을로 건너가는 길목. 우기 때 강이 범람하면 이 길은 끊긴다.   

  솔밭해수욕장은 경주에서 가장 잘 알려진 해수욕장이었다. 고운 모래가 길게 펼쳐져 있고 교통이 편리해 여름철이면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지만 과거에는 피서객들이 버스를 타고 이 마을에 왔지만 지금은 대부분 자가용을 이용해 피서객이 많이 줄었다. 주차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 폐교된 전촌초등학교의 모습.   

  최교식 이장은 "경주시에 주차공간 확보를 위해 여러 차례 건의를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주차 환경이 나아지면 과거의 번화했던 마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마을에서 장진마을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강바닥에 난 길을 건너야 한다. 하지만 이 길은 여름철 비가 내리면 사라져 버린다. 최 이장은 "새마을과 장진마을을 잇는 다리를 놓는 것도 마을의 숙원사업"이라며 "솔밭해수욕장과 아름다운 장진항을 잇는 인프라가 구축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살기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 전촌2리의 고령자 전병윤 할머니.   

  전촌2리는 그동안 장진항을 중심으로 한 뉴딜300 사업에 응모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하지만 내년에 다시 응모할 예정이며 성사가 된다면 마을 발전이 획기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장진항을 리모델링하고 관광자원으로 구축한다면 동경주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거듭날 전망이다.

  김종식 새마을 지도자는 "전촌1리 해안에는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고등어가 많이 잡혀 낚싯배가 하루에 30척이 뜰 정도였는데 지금은 기후변화로 고등어가 사라져 버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그때는 자동차를 세울 공간이 부족했고 낚싯배는 주말에 하루 100만원 정도를 벌었으니 당시가 그립다"고 말했다.

                      ↑↑ 경영지원실 시설부 직원들이 자매마을 환경정화활동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마을의 큰 언니로 불리는 전병윤(85) 할머니는 22살에 시집와서 소형어선으로 고기잡이 하는 어부 남편과 함께 살았다. 전 할머니는 "이 마을은 근방에서 유일하게 대문이 없는 마을일 정도로 인심이 후하고 정직한 사람들만 살았다"며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시래기 한 올이라도 나눠먹을 정도로 형제처럼 지낸다"고 말했다.

  월성원전의 자매부서는 경영지원실 시설부다. 김대우 대리는 "감포에서도 가장 번화했고 인정이 넘치는 전촌2리가 과거의 영광을 찾을 수 있도록 자매부서에서도 갖가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식   74949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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