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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용 칼럼] 빈현루(賓賢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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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 작성일20-12-1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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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변정용황성공원 김유신 동상 남서쪽에 있는 호림정 사무실(현 빈현루) 신축은 사우들의 뜻과 9.12 천재지변 등으로 당시 집행부(사두 김석률, 2017-2018)가 제안하고 도협회(회장 박동섭)의 지원으로 경주시(시장 최양식)가 2017년 예산에 반영함으로서 성사된 것이다.
 
  약 1년간의 공사 끝에 2층 건물이 완공되었다. 멋진 건물이 완공된 만큼 이에 어울리는 건물 이름과 현판을 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천년고도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내세울 만한 역사적 명칭을 찾아보기로 하고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서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내용을 찾기가 어려웠다. 마침 동경잡기(東京雜記, 조철제 역저, 2014)를 발견하고 연전에 일독한 바가 있기도 하여 찾아보았다. 동경잡기는 기유년(1669, 현종 10년) 경주 부사 민주면(閔周冕)과 이채, 김건준이 함께 간행한 판본을 신묘년(1711,숙종 37년) 2월에 남지훈(南至熏) 경주부윤이 재간행한 경주(서울)의 역사를 담은 귀중한 책이다.
 
  신라 때부터 당시까지 역사를 소상히 기록한 책인데 마침내 연관성이 깊은 건물 이름 빈현루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평소 이러한 일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신 박용학 고문께 내용의 사본을 보내드렸다. 그 뒤 호림정(사두 성창룡, 2019-2020)은 건물명칭 결정 사안을 일련의 절차를 거쳐서 현재 동쪽 현관문 앞에 임시나마 현판을 걸게 되면서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니 비로소 건물이 완공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읍성 내의 빈현루의 위치는 동경관과 향일문 사이 공간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아마 임진왜란 때(1592년) 왜군이 읍성을 점령하였고 2차에 걸친 읍성 탈환전투를 하던 중에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441년 부임한 김익생(金益生, 1388~1450) 경주부윤은 기록으로 판단할 때 백성들의 추앙 받는 목민관으로 파악된다. 김공(金公)은 고려 절의 선비 집안으로 예조판서를 지냈으며, 사육신 박팽년 공이 외조부이면서 효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충남 아산시 도고면에 정려(태종5년)각이 있다.
 
  활쏘기는 단군조선 초부터 경당에서 미혼 청년들에게 가르친 과목 중 하나였고 낭가제도는 신라의 화랑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신라 이후 활쏘기 관련 사적을 찾던 중 빈현루의 발견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사실 무예 시험은 드물게 열리겠지만 국가안보와 상무정신을 일깨우는 상징으로써 무예시험장과 빈현루를 건립하였을 것으로 본다. 현판과 기문 일은 다음에 부임한 권극화 부윤이 완성한다. 권공은 생몰연도 미상이나 1414년 알성문과 급제 이후 1439년 전라도 관찰사, 1446년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하는데 김부윤이 1441년 부임한 것으로 보아 권부윤은 이 연간에 경주로 오신 듯하다.
 
  경주는 신라천년 수도이면서 영남에 으뜸인 도시에 걸맞게 당대 최고 서예가 안평대군(安平大君 李瑢, 1418.9.19.-1453.10.18)의 현판 글씨와 당대 최고 학자인 영의정부사 정인지(鄭麟趾,1396.10.28.-1478.11.26.) 선생에게서 기문을 받은 것으로 본다. 만약 안평대군이 쓴 글씨와 현판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면 마치 서울 도성 남대문의 숭례문 현판처럼 국보급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앞으로 2층 남쪽과 현재 동쪽 편에 현판을 준비해서 걸어야 할 것으로 본다. 빈현(賓賢)은 시경 대아 행위 기삼(詩經 大雅 行葦 其三)에 있는 서빈이현(序賓以賢)에서 따온 말이다. 이 시는 주나라(공력전 11세기-공력전256년) 통치집단과 족인들이 모여 활쏘기 시합을 하면서 잔치를 벌이는 모습을 노래한 것이라고 하며,
 
  그 내용은 이러하다. “敦弓旣堅 四鍭旣鈞(조궁기견 사후기균)붉은색 활은 강건하고 네 개의 화살은 고르도다. 舍矢旣均 序賓以賢(사시기균 서빈이현) 화살을 쏘아 맞추어 빈객의 순서를 정하네. 敦弓旣句 旣挾四鍭(조궁기구 기협사후) 붉은색 활 힘껏 잡아당겨 네 개의 화살을 쏘면, 四鍭如樹 序賓以不侮(사후여수 서빈이불모) 네 개의 화살 모두 과녁을 뚫어 빈객의 서열 욕됨이 없네.”
  호림정 사우들께서 빈현루에 얽힌 깊은 뜻을 되새기면서 심신을 연마한다면 보다 높은 궁도의 길을 열어나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국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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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