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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 인류문명사] 신대륙에서 온 감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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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TRA 밀라노 무역관장,… 작성일20-12-2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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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TRA 밀라노 무역관장, 세종대학교 대우교수 홍익희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참 많은 것들을 남겼다. 그 중에서는 감자도 있었지만, 당시 스페인 사람들은 잉카 원주민들이 먹던 감자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먹을 수 있는 '풀뿌리' 정도로 취급할 뿐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감자가 스페인으로 전해진 것은 세월이 꽤 지난 1570년경이었다. 첫 시작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돌아갈 때 먹을 식량으로 감자를 배에 실었던 것이었다. 감자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 오랜 항해에도 상하지 않고 잘 견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에 들여온 감자가 유럽 전역으로 전해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유럽인들은 '미개한' 남미 원주민들이 주식으로 먹던 감자를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마도 땅에서 캐내 흙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감자는 천한 사람들이나 먹는 천한 음식이라는 편견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특히 감자의 그 울퉁불퉁한 모습과 작은 점들은 그 당시 유행했던 전염병인 천연두를 연상시켰고, 심지어 '악마의 열매'라며 멀리했다. 그래서 초기엔 주로 가축사료로 사용했다.
 
  감자를 터부시한 경향은 오히려 하층민들 사이에서 더 심했다. 또 감자가 문둥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소문이 영국에서 돌기 시작해 감자는 더욱 서민들과 멀어져 갔다.그러나 거듭되는 흉년으로 굶주리던 17세기 초반, 아일랜드인에게 감자는 구세주로 등장한다. 이후 독일에서는 30년 전쟁이 한창인 17세기에,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7년 전쟁 중인 18세기 중반에 각각 감자가 주요 식량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감자의 보급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18세기 말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감자를 경작해 식량난을 해소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농부들은 감자를 꺼림찍하게 여겨, 보는 족족 불쏘시개로 태워버리곤 했다. 이처럼 고집 센 농부들의 저항에 부딪혀 별 성과가 없자, 프리드리히 대왕은 감자밭에 근위병을 세워 철통같이 지키도록 했다. 감자밭을 둘러싼 근위병들의 존재는 감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일으켰다.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것이기에 저렇게 보초까지 설까 싶어 궁금증이 극에 달한 사람들은 어느날 밤 감자를 서리해가 맛을 보고는 신세계를 느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자의 고소한 맛에 익숙해진 농부들이 점차 감자를 심기 시작했고, 오늘날 독일은 '감자의 나라'가 되었다.
 
  그 후에도 감자는 18~19세기 배고픈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양식으로 자리 잡으며, 산업혁명에 필요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한 일등 공신이 되었다.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럽에서 감자를 가장 먼저 재배한 곳이 아일랜드였다. 아일랜드는 감자 재배에 최적의 기후와 토양을 갖췄을 뿐 아니라, 당시 영국의 식민 지배로 빈곤했던 아일랜드 사람들에게는 기르기 쉽고 생산량도 많은 감자가 신의 축복이었다. 특히 간편하면서도 다양한 조리법 덕분에 인기가 많았다.
 
  이처럼 감자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감자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져, 아이러니하게도 약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굶어 죽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1845~1850년 동안 있었던 아일랜드의 감자역병 대기근인데, 당시 식량을 거의 감자에만 의지해오던 아일랜드 사람들에겐 엄청난 타격이었다. 감자가 역병으로 모두 썩어가면서 사람들도 점차 기근으로 죽기 시작했다. 이에 아일랜드 인구는 800만 명에서 대기근 이후 650만 명으로 줄어들었고, 기근을 피해 북아메리카로 이주한 사람도 100만 명이 넘었다. 그때 당시 100만명이면 엄청난 인구로, 이를 미국 이민의 역사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
 
  감자가 중국에 소개된 건 17세기 후반, 네덜란드 선교사를 통해서였다. 중국은 영토가 방대하고 지방마다 기후조건이 달라 감자가 전국으로 퍼지는데 상당한 기간이 걸렸다. 감자 재배가 중국에서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건 기근이 발생한 1959년 이후였다. 감자가 중국에서도 기근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했던 것이다. 한편 일본은 중국보다 조금 이른 17세기 초에 네덜란드와 교역이 활발하던 나가사키 항을 통해 감자가 들어왔고, 18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한국으로의 감자 전파는 1824년 만주에서 처음 전해졌다는 북방 유입설, 그리고 1832년 영국 상선에 의해 들어왔다는 남방 유입설이 있다.
 
  어떤 것이 사실이던간에, 우리의 가난한 시절을 함께한 감자가 한국 땅에 발을 들인지는 불과 180년밖에 안 된 셈이다.이처럼 감자가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에는 식량이 부족해서 기아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 흔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식량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로 기아 현상이 발생한다. 곧, 한 쪽에선 식량이 남아돌고 다른 한 쪽에선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20세기 들어 세계 인구가 4배나 늘어나면서 후진국에서는 기아 현상이 다시 심화되고 있다. 인류 모두의 관심과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KOTRA 밀라노 무역관장,…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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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