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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중 문화칼럼] 설산(雪山)의 진미(眞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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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가수 권오중 작성일21-01-0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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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가수 권오중매서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차가운 북풍에 눈이 휘날린다. 바람에 흩날 려 눈송이가 대각선을 그리며 내린다. 비록 함박눈은 아니지만 하염없이 눈이 내려 소리 없이 온 누리에 소복소복 쌓인다.
 
  산속의 등산로는 이미 눈에 덮여 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등산로에 발자국을 남기며 가다 보면 문득 길이 없어져 '길을 잃고 헤매는 사슴 한 마리' 처럼 미로 속을 이리저리 헤매게 마련이다.
 
  처음에 오를 때는 눈이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며 미끄럽지도 않았는데, 정상을 향하여 위로 올라갈수록 눈은 많이 쌓여 있고 매우 미끄러웠다.이제는 아이젠 없이 걷기가 힘들어 할 수 없이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등산화에 착용하였다.
 
  오래간만에 아이젠을 차본 까닭에 아이젠이 자꾸 풀어진다. 걷다 보니 한쪽의 아이젠이 없어졌다. 아래를 찾아보니 눈 속에 아이젠이 숨어 있었다. 다시 아이젠 을 차고 걸어 올라가는데 자꾸만 발이 조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앉아서 아이젠을 천천히 살펴보니 연결고리의 짧은 쪽에 S자가, 긴 쪽에 L자가 쓰여 있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올바르게 착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어 고쳐 매니 발도 조이지 않았고 벗겨지지도 않았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구멍에 실을 꿰어야 한다'는 속담과 같이 무엇이든 급하게 서두르다 보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름다운 설산(雪山)에서 다시금 깨달았다.
 
 
  하얀 눈꽃이 만발한 산/환상의 백색 천국이다/하얀 눈까지 솔솔 뿌려/황홀한 눈꽃 세상이다//가쁜 숨 몰아쉬며 설산雪山에 오르니/설화雪花를 머리에 인 산죽山竹이/먼 길 달려온 우리를/화안한 미소로 맞이한다//재를 지나 정상까지/꽃 중의 꽃 서리꽃이/화사하게 치장하고/마음을 송두리째 빼앗는다//가지가지마다 활짝 핀 서리꽃/영락없는 사슴뿔이고/눈 녹아 얼어 버린 얼음꽃/수정처럼 반짝반짝인다//하얀 서리꽃으로 수놓은/면사포를 쓴 작은 나무/바닷속 산호초를/산에 옮겨 놓은 듯하다//바위에 핀 서리꽃/나뭇가지마다 핀 서리꽃/함께 어우러져/무아지경無我之境이다//뉘라서 이토록/화려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현란한 조각을 만들 수 있으랴/자연이 빚어낸 이 황홀한 비경/지상으로 잠시 내려온/천국의 모습이다//눈부시게 하얀/눈의 천국을 걸으며/눈꽃에 흠뻑 취한/신선과 선녀들/하얀 미소 지으며/하얀 마음이 된다
 -권오중, '환상의 눈꽃여행'

 
  산 위로 오를수록 설경은 점점 더 아름다워져 필설(筆舌)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환상의 극치를 이루었다. 산수화의 대가가 그린 동양화인들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천국이 따로 있나 이곳이 바로 천국이다.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순백 의 하얀 천국이다.
 
  진흙탕 속에서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세상사 이야기도, 세사의 근심.걱정도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은백색의 천국이었다. 자연의 넓은 품속에 그것도 하이얀 눈 이불 속에 안기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푸근해지고 평화로워지는 것 같다.
 
  특히 나뭇가지나 솔잎 위에 핀 설화(雪花)는 정말로 아름답다. 눈이 쌓여 핀 설화보다 습기가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서리꽃(상고대)은 정말로 환상적이다. 아~ 하고 탄성이 저절로 나오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눈을 이렇게 실컷 맞으며 하얀 눈사람이 되어 산속을 걷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데 기막힌 행운을 얻은 것이다.
 
  이윽고 산 정상에 올라 눈밭에 둘러앉아 설경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을 들이 키니 그 맛이 정말 기가 막히다. 카~ 하는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나온다.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 이태백인들 안 부럽다. 신선이 어디 따로 있나! 지금 이 순간 내가 바로 신선이다.
 
  하얀 면사포를 쓴 신부의 모습처럼 순백의 화사한 겨울 산의 아름다움을 음미하 며, 눈이 부시도록 하얀 눈 이불 속을 하염없이 걷는 설산(雪山)의 진미(眞味)! 이 진미를 나 혼자 맛보고 즐기기에는 너무나 아쉬워 "벗이여! 꿈 깨어 내게 오라" 는 노래가 절로 나왔다.
시인·가수 권오중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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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