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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특별기고] 신라 귀교(鬼橋)의 성적(性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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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화랑유치원 이사장·교육학박… 작성일21-06-1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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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화랑유치원 이사장·교육학박사 김영호경주를 신라의 도읍으로 정한 것은 아마도 서천, 남천, 북천이라는 강의 유유한 흐름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뭄이 심해서 다른 지역에는 하천이 말라 그 흐름이 멈출 때도 있었는데, 이들 하천은 고갈되지 않고 흐름을 과시하면서 경주시민들의 생명을 지켜주었으니 단순한 하천이 아니라 보천(寶川)이 되었던 것이다.
   사라호 태풍이 영남지방을 강타하여 수란(水亂)이 났을 때는 이 하천이 범람하여 서천다리가 잠길듯하여 유실 위험을 받았지만 그 후로는 특별한 일천(溢川)의 흐름이 없어서 제방과 강바닥에 자연생장의 화초가 아름다운 화원을 이루었다. 
   신라 때는 남천을 작명할 때 모기문자(문(蚊)를 넣아서 문천(蚊川)이라 부른 것을 보면 문천에 모기가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강변의 무성한 잡초로 인해 모기가 집단서식을 하여 뇌염이 유행할 때는 불편을 주었으나, 그래도 야생초가 고운 꽃을 피워서 초원의 빛이 되어 장폭의 풍경화를 그려주었는데, 이 천변이 정비가 되어 그런 야생화의 군락지는 사라졌지만 새로 계획하여 심고 뿌린 씨앗에서 각종 꽃들이 철 따라 피고 있어 아름다운 강변으로 공원화 되었다. 
   견고하게 축조된 제방과 산책로, 자전거길, 주차장 등이 서천 둔치에 마련되어 시민들의 건강증진과 정서함양에 많은 도움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새문화의 발상지로 변하고 있어서 퍽 자랑스럽다. 
   요즈음은 서천과 남천이 만나는 곳에 '황남대교'가 건설되었고, 서천강변도로는 경부고속도로 경주 톨 게이트까지 강변을 따라 직선화 공사가 준공을 앞두고 담당업체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서 머릿속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게 한다,
   이 서천강변로에서 보면 서쪽에는 선도산의 미려한 수봉(秀峯)에서 아미타삼존불이 내려다보며 지켜주고, 산 아래에 있는 신라 태종무열왕릉과 고분, 그 동북쪽에는 법흥왕릉,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 서악서원, 서라벌대학교, 흥무공원, 금장대, 동국대학교 등이 원경으로 자리하고, 동쪽으로는 오릉과 숭덕전, 흥륭사와 흥릉들, 신라초등학교, 새화랑유치원, 스타버그 커피숍, 버스터미널, 예술의 전당, 황성공원 등이 열을 지어 있다. 
   남쪽에는 남산의 다양한 모습이 일경(一景)을 첨가하여 조화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어서 멋진 관광도로를 겸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개통이 무척 기다려진다.
   서천 강변도로를 다리는 차량이 고속로도로 진입하려면 서천을 따라 죽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새화랑유치원을 조금 지나면 동쪽으로 직각회전을 하여 돌아가게 되어서 차량소통에 많은 불편을 주고 있는데, 직선화 공사가 완공되면 강변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고속도로 톨 게이트까지 시원하게 직진할 수 있어서 교통소통은 물론 시간절약과 유류소모의 절약 등 많은 이점이 발생할 것 같다.
   히 이 남천과 서천이 만나는 부근은 신라의 고담(古談)이 전해오는 곳이다. 폐위되어 훙(薨)한 진지왕의 현신(現身)이 남편과 사별한 도화녀(桃花女)와 야밤에 합궁(合宮)하여 낳은 비형랑이 진평왕의 명에 의해 하루 밤에 귀신들을 동원해서 다리를 놓았던 곳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진지왕이 사랑부의 서녀(庶女)인 도화녀가 아름다워 궁중에 불러 간통하려고 하니, 그녀는 '여지소수(女之所守)는 불사이부(不事二夫)라' "여자가 지켜야 할 바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남편이 있는 데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것은 만승(萬乘)의 위엄으로도 끝내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목숨을 걸고 정조를 지킨 설화를 전해주고 있다. 
   비형량이; 귀신들과 돌을 다듬어 세운 기이한 다리이기에 '귀교'라 부른 것이며, 귀교가 있었던 답야(沓野)가 '귀들'이며, 오늘날도 오릉 서쪽 넓은 들을 '구드리들', '구들'이라 부르고, 거기에 있는 논을 '구들 논'이라 함은 '귀들'에서 온 방언이라 생각된다. 
   두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 교통 소통을 위해 다리를 건설하였는데 '귀교'라 명명하지 않고 '황남대교'라 명명하였으니 아쉬운 느낌이 없지 않다.  귀교라고 지었더라면 아마도 신라여인이 절대왕권 앞에서도 정조를 지키며 목숨보다 소중이 여겼던 성적 신념을 각성할 수 있는 명소(名所)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새화랑유치원 이사장·교육학박…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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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