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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문화칼럼] 거북의 심장처럼 헤밍웨이의 긍정적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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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진 작성일20-04-1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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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서유진선생은 누구나 잘 아는 소설 '노인과 바다'에 대해 물었다. 한 학생이 실망을 드러내며 대답했다. 삼일 밤낮을 죽도록 고생해서 잡은 대어를 상어에게 다 뜯어 먹히고 뼈만 가지고 돌아오다니. 너무하지 않아요? 결국 그런 허망한 꼴로 돌아오는 결말이라니, 저는 불편했어요.
     그럼 어떻게 해? 가난하고 늙은 산티아고 노인이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했는데, 먹을 것이 없어 이웃 소년이 구해줘서 연명하는 지경에, 배보다 큰 고기가 낚시 바늘에 걸렸어. 너라면 포기하고 돌아가? 그 고기를 팔면 한동안 양식 걱정이 없을 텐데 낚시 줄을 끊고 고기를 놓아주겠어? 물론 이 작품에 허무 의식이 바탕으로 깔린 건 사실이야. 허망하다고 읽히는 것도 하나의 독법이지. 하지만 나는 결과론적으로 삶을 해석하는 것을 금하고 싶네. 아직 여러분은 이 현실과 미래에 대한 꿈과 맞붙어 봐야 할 청춘이기 때문이야.
     이 소설은 줄거리가 간단해. 대어와 사투를 벌이는 과정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우리가 산티아고 노인에게 배울 게 뭘까? 이번 시간에는 강인함과 긍정성에 관한 문장을 찾아 메일에 올리도록.
     선생은 과거에 탐독했던 '노인과 바다'를 펼쳤다. 노란 형광펜의 밑줄 친 문장을 살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임용시험에 떨어지고 낙심했을 때 그는 항상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 강인함을 배웠고, 공부에 회의를 느낄 때마다 산티아고 노인의 말을 떠올리며 힘을 얻었다.
 
     다른 어부들은 60길 되는 낚싯줄을 던져 놓고 100길이라고 여기며 흔들리는 대로 내버려 두었지만 노인은 달랐다.
     "나는 낚싯줄을 정확히 드리운단 말이야. 단지 운수가 좋은 날을 못 볼 뿐이지. 그렇지만 누가 아나? 오늘일지.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데. 운수가 좋다는 건 좋은 일이야. 그렇지만 나는 운수보다 정확하게 하는 게 더 좋아. 그러면, 행운이 다가올 땐 만반의 준비를 한 셈이니까"
 
     바다의 아침 햇살이 평생 노인의 눈을 상하게 했지만, 그런데도 난 아직 눈은 좋아, 하고 노인은 자긍심을 가진다. 선생도 취준생일 당시 노인처럼 말했었다. 난 아직 젊고 시간이 있다. 자신을 거북에 비유한 대목에서는 노인의 투지와 강인함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애심이 우러났다.
     노인은 길이가 조각배만 하고 무게가 1톤이나 되는 거대한 거북에 대해서까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거북은 칼질을 해서 살을 갈라놓은 후에도 심장이 몇 시간이나 심하게 뛰기 때문에 대개는 거북에게 무자비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나도 역시 그런 심장을 가졌고 손과 발도 거북이하고 비슷하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맞아, 어려움이 우리를 아무리 위협해도, 거북 같은 심장으로 이겨내야 해. 거친 손의 흔적은 생의 자랑이지" 라며 선생도 주먹을 움켜쥐었다.
     노인은 자신의 배 길이보다 2피트는 더 긴 대어와 대결하면서 손에 쥐가 나고 살이 찢기는 고통을 당했다. 삼일 동안 어깨로 낚싯줄을 지탱하며 사투를 벌였고 상어밥이 될 위기도 맞았다. 노인은 신앙을 갖지 않았지만 이 큰 고기를 잡게만 해준다면 천주경과 성모경을 열 번이라도 외우겠다고 약속하며 용기를 냈다. 노인의 혼잣말은 거의 아포리즘에 가깝다
     "기회란 매번 새로운 것이며 지난날의 일 따위는 지금 생각하지 말자"
     "나는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으며,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를 보여주겠다"
     "나는 신념을 가져야 해"
     "잠을 안 자도 된다. 그러나 그건 너무 위험하다"
     "가치 없는 일을 하느라고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내 고통은 문제 되지 않는다. 내 고통쯤은 억제할 수 있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다. 게다가 그건 죄악이다"
     "끝까지 해보고야 말 테다"
 
     선생은, 연극과 영화에서 할 수 없는 것을 소설이 표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위대한 작품을 50분 수업으로 다 논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 선생처럼, 필자 역시 그의 수업연구 내용 전부를 지면에 옮기려면 수십 페이지로도 모자랄 것 같다. 선생은 눈빛이 형형한 노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음 수업 주제는 '산티아고 노인의 사자 꿈'이라고 기록했다.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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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