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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의 라오스로 소풍갈래?] 찢기고 할퀴어져도 고유의 향 지켜낸 신비로운 국가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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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작성일20-05-0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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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티안 씨엥  마을의 불상공원에 있는 명상에 빠진 부처상. 이 조각은 뱀의 왕 무차린다가 명상 중인 부처를 위협하는 폭풍우로부터 지켜내는 모습을 형상화 했다.   
[경북신문=이상문기자] 갑자기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닥쳤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큰 나무 밑에서 깊은 명상에 빠져 있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쳐도 부처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부처님의 명상은 열반의 경지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성난 폭풍우는 부처님의 연약한 몸을 휩쓸어갈 듯이 덤볐다. 부처님이 기대고 있는 나무 안에는 뱀의 왕인 무차린다가 살고 있었다. 위험에 닥친 부처님을 보고 무차린다는 몸으로 부처님을 감쌌다. 그리고 목을 뱀처럼 넓혀서 7일동안 부처님을 지켰다. 부처님은 폭풍우가 잦아든 7일 후 명상에서 깨어났고 자신을 구해 준 무차린다를 수호신으로 지목했다.
 
  ◆ 곳곳에 수호신 나가가 존재하는 나라

  산스크리트어로 뱀을 나가(Naga)라고 부른다. 뱀 중에서도 목이 넓은 코브라를 일컫는다. 나가는 힌두 신화에 등장하는 일종의 신이다. 나가는 불교와 함께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용이라는 한자어로 번역된다. 그래서 인도차이나 반도에 무수하게 목격되는 나가상은 뱀도 아니고 용도 아닌 요상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특히 라오스에서 나가는 불경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격상된다. 아마도 무차린다 설화가 설득력 있게 전해진 모양이다. 국민의 90%가 불교를 신봉하는 불교국가 라오스에서 나가는 단순한 불경의 수호신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지며 곳곳에 나가상이 존재한다.

  1828년 이웃나라 시암왕국이 라오스를 침공했다. 당시의 시암왕국은 엄청난 힘을 가진 국가였다. 라오스인들은 아름답게 지켜온 왕국이 멸망할 것이라고 낙담을 했다. 시암의 군인들은 도시 한 가운데 있는 황금의 탑에 도달했다. 같은 불교국가이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탑을 자신들의 왕국에서는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그 탑이 황금으로 옷 입혀져 있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장관이었다. 군인들은 라오스를 침공할 때의 본연의 목적을 곧 잊고 말았다. 장군이 명을 내려 탑에 입혀진 황금의 옷을 벗기도록 했다. 전쟁의 노획물 중 황금만한 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 때 탑 속에서 일곱 마리의 나가가 출현했다. 시암의 군인들은 기겁을 했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메콩강을 건너갔다. 이 탑이 바로 탓담이다. 그러므로 나가가 국가의 수호신인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 일곱 마리의 나가가 나타나 시암왕국의 군인을 물리친 전설을 간직한 '검은 탑' 탓담.   

◆ 일곱 마리의 나가가 출현한 '검은 탑'

  탓담은 비엔티안의 도심에 있고 '검은 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시암의 침략자들이 황금을 벗겨가 버렸으니 검은 속살을 드러낸 탑의 이름으로는 적합하다. 탓담은 미국 대사관 주변에 있으며 지금은 로터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거무스레한 몸통에 온갖 잡풀들이 돋아나 마치 버려진 폐탑처럼 그로테스크하게 보인다. 나라를 지켜낸 숭고한 탑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초라할 정도다. 늦은 밤 시간 인적이 뜸할 때 탓담을 방문하면 무섬증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여행객들은 이 탑을 그냥 무심코 지나쳐 버린다. 하지만 탑은 경건하고 근사하게 생겼다. 전형적인 크메르 양식의 탑은 불교국가 라오스를 상징할 수 있는 탑으로 손색이 없다.

  탓담은 도시 한켠에서 고요하게 직립해 있다. 로터리를 돌아가는 툭툭이의 매연을 삼키기도 하고 깊은 밤 여행객이나 주민들이 몰래 투기하는 쓰레기를 거느리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비엔티안, 아니 라오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조형물을 꼽으라면 거침없이 탓담을 꺼내든다. 라오스의 역사를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까닭이다.
                     ↑↑ 라오스의 국립박물관으로 활용되는 왓프라케우의 계단을 내려오는 동자승을 나가상이 감싸고 있다.   

◆ 수많은 외침에도 고스란히 지켜낸 전통문화

  라오스의 건국신화는 매우 재미있다. 그들의 조상은 조롱박에서 태어났다. 쿤 보롬이라는 신이 하얀 코끼리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지금의 라오스 동부지역에 두 개의 조롱박을 발견하고 슬금슬금 톱질을 했다. 박이 갈라지자 그 안에서 남자와 여자, 동물, 씨앗 등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구성요소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롱박에서 나온 일곱 남자들은 땅을 일곱 개로 나눠 지배했다. 이것이 라오스의 시초다.

  그 이후의 역사는 상세하지 않다. 기록에 남아 있는 라오스의 역사는 14세기 중반에 건국된 란상왕국에서 비롯된다. 란상왕국은 라오스 최초의 통일 국가이며 '백만 마리의 코끼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 이전의 역사는 주로 승려들이나 구전시인들에 의해 전해져 왔다. 심지어 란상왕국 이후의 역사도 이웃나라인 태국과 베트남의 역사학자들이 구체화시켰다고 하니 라오스의 역사가 주체적 사관에 의해 전해졌다고 여길 수는 없다.

  통일국가였던 란상왕국 이후로도 라오스 왕조들의 역사가 순탄하지는 않았다. 이웃나라인 태국과 캄보디아, 미얀마의 역대 왕조들이 라오스를 방관하지 않았다. 수시로 침략하고 보물을 약탈해 갔다. 왕족을 볼모로 잡기도 하고 땅의 일부를 귀속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근대에 와서는 프랑스의 식민지 시대를 거쳐 일본의 점령을 받았다. 이 정도라면 라오스의 고유한 문화는 갈기갈기 흐트러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의 문화는 오롯이 그들만의 것이다. 수많은 소수민족들로 구성된 국가지만 인도차이나 반도의 여타 국가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문화를 지켜냈다.

                      ↑↑ 무수한 전쟁에서도 훼손되지 않은 유일한 사찰인 왓시사켓의 요사채 계단을 장식하고 있는 나가상.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신비로운 일이 아닌가. 아마도 국토의 70%가 산악지대로 이뤄진 험준한 지형지세가 스스로의 향기를 지켜내는 데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란상왕국에서부터 받아들인 소승불교가 라오스인들의 정신적 뿌리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무수한 외침에 흔들리고 시달렸어도, 찢기고 할퀴어졌어도, 굳건하게 지켜낸 그들의 문화는 바로 탓담처럼 엄중하다. 비록 검게 변하고 수풀이 뒤덮였어도 일곱 마리의 나가가 살면서 나라를 지켜낸 탓담처럼, 라오스의 문화도 상처받고 흔들렸지만 묵묵하게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상문   iou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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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