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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생활칼럼] 귀농한 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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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영미 작성일20-05-1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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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김영미갑씨는 이 태전 우리 동네로 귀농을 했다. 갑씨의 이주는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일은 시북이 있는 다랭이논을 메운 것이다. 족히 한길은 넘게 꺼졌던 땅이 메워져 택지가 되었다. 환골탈태란 말이 이런 경우에도 쓰이려나? 물이 새겨서 푹푹 빠지던 논이 생흙으로 덮여 넓어진 모습은 훤훤장부같았다.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했기도 하지만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던 일을 갑씨는 해냈다. 그리고 자랑이라도 하듯 번듯한 집을 지었다.
     갑씨 집에는 날마다 낯선 사람이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주말엔 좁은 안길이 주차장이 될 지경이다. 사람들은 굽은 골목을 신기한 듯 휘젓고 다니며 이집 저집을 기웃거렸다. 어르신들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인사도 건넨다. '자식이 몇이냐?' '자주 오기는 하느냐?' '이 땅이 당신 것이냐?' 마치 호구 조사를 하는 듯 무례하더니 돈도 안 되는 농사 짓지말라며 건강까지 염려해준다. 그리고는 이것도 안하면 심심할거라며 저희들끼리 찧고 까분다. 동네를 찾아 온 손이라 못들은 척 외면은 하지만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촌에는 식구끼리 먹거나 지인과 나눠먹으려 구석구석 키우는 나물 밭이 있기 마련이다. 올봄에도 밭둑이나 담밑에 나물이 손을 타기 시작했다. 동네사람들은 남의 것에 손을 대지 않는다. 누구네 밭에 무슨 나물이 나는지 꿰고 있지만 그것의 소용 처도 알기 때문이다. 며칟날 드는 제사나 생신에 올릴 것이며 그때 오는 형제들과 나눠먹을 요량으로 아낀다는 것을 말이다. 얻어는 먹을지언정 함부로 훔치지는 않는다.
     갑씨땅 아래에는 손바닥만 하지만 내 미나리 밭이 있다. 저절로 솟는 샘이 있는 논에 꼬랑지를 막아 만들었다. 그런데 누군가 싹 베어갔다. 작년에도 우리 식구는 미나리 맛을 보지 못해 벼르는 중이었다. 오늘은 드디어 미나리 도둑을 발견했다. 밭 건너 멀리서 보아도 짐작대로 갑씨다. "그 미나리 우리 것입니다. 베지 마세요". 갑씨는 미안하다 한마디 없이 일어서 들어가 버린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쫓아가 따지고 싶었으나 관뒀다. 이제 한 동네사람인데 괜히 얼굴 붉힐까 싫기도 하지만 따져봐야 그깟 풋것 몇 푼어치나 되느냐며 도리어 인심 운운한다면 궁할 대답 때문이었다. 갑씨가 논을 메울 때 내 미나리 밭으로 가는 길인 두렁도 함께 사라졌다. 빗물을 받아내어야 할 도랑을 없애고 경계 끝까지 작물을 심어놓았다. 자기 땅은 한 뼘까지 알뜰하면서 남의 땅에 미나리는 공 것인 줄 아는 심보가 밉다.
     동네 안뿐이 아니다. 낯선 이들은 뒷산으로 향한다. 왁자하게 웃으며 떼를 지은 무리들 속에는 갑씨도 끼었다. 뒷산에는 고사리가 난다. 동네사람들이 봄 일을 하는 짬짬이 끊어다 말려 일 년을 요긴하게 쓰는 것이다. 고사리는 아직까지 제사에는 빠질 수 없는 나물이다. 모판작업이랑 밭일로 바빠 못가는 틈에 엉뚱한 이들이 싹쓸이를 한 것이다.
     어찌나 모지락스럽게 끊었는지 고사리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촌에서는 부지런만 하다면 굶지는 않는다. 땅은 기대어오는 사람들을 보듬고 내어준다. 그러나 땅에도 한계란 것이 있다. 식물은 올라오는 순을 끊어버리면 살아남기가 어렵다. 사정을 보아가며 몇 개씩 끊고 남겨야 내년에도 순을 올린다. 고사리가 화수분인줄 아는 그들 때문에 아마도 고사리 밭은 곧 사라지지 싶다.
     비단 갑씨만을 지칭하겠는가. 낯선 환경에 들어서는 사람들 대부분이 간과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환경에 적응하며 산다. 도시에 사는 방법이 있듯 촌사람들도 나름 질서가 있다. 꽃은 보면 꺾고 싶고 열매는 따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라지만 우리나라에 주인 없는 땅이 없듯이 나물도 그렇다. 밭둑에 잡초 같아도 그 자리에 존재하기까지 그만한 노력을 들여 가꾸는 것이다. 촌인심 운운하며 서리를 하던 시대는 지났다.
     지나던 아주머니가 "저 머위가 맛이 있어 보이네요. 좀 뜯어 가면 안될까요" 허락을 구한다. 흔쾌히 그러라고 대답을 했다. 아주머니는 가면서 인심 좋다는 인사를 한다. 주고도 기분이 좋다. 인심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서로를 존중하는 것 말이다. 갑씨가 촌동네에 적응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으면 좋겠다.
수필가 김영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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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