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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생활칼럼] 멈추자 비로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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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영미 작성일20-08-1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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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김영미길을 가다 잠시 멈추어야할 때가 있다. 문득 서 바라보게 되는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생경스러움은 신선함으로 다가오고 때로는 특별한 감동을 준다. 그 날도 마음이 바쁜 어느 날들 중 하루였다. 정수리를 데우는 땡볕에 한 줌의 그늘을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도로 양편으로 주차해 시야를 가린 것도 모자라 좁은 인도위에 까지 점령한 차 사이를 요리조리 곡예를 하듯 걸으며 속으로 화가 났다. 교통단속원은 다 어디 있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까? 시민의식이 어쩌니 저쩌니 환경이 어떻고를 곱씹는데 저 앞에 아이들까지 길을 막고 있었다. 학교와 멀지않으니 아이들이 모인 것은 생소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즈음에는 아이들 보기가 드물어졌다. 그것도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 좀체 볼 수 없다.
 
  아이들은 건물에 붙은 작은, 정말로 손바닥만 한 화단 앞에서 다섯 개의 머리를 맞대고 있다. 눈은 일제히 한 곳을 바라본다. 여름노을보다 더 강렬한 노란색에 붉은 빛까지 곁들여진 꽃이었다. 외국에서 들여와 우리 땅에 적응한 종자인 듯 예뻤다. 아이들은 꽃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나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앞을 지나쳤었지만 멈추고 바라본 적은 없다. 길이 막힌 내가 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을 구경한다.
 
  멈춘다는 것은 관찰한다는 말인가 보다. 멈추자 비로소 꽃이 보이고 마음이 들린다. 아이들 얼굴이 하나같이 진지하다. 눈을 황소같이 뜨고 꽃 속을 탐구 한다. 가만히 보던 한 아이가
 
  "꽃 이름이 뭘까" 입을 떼었다.
 
  돌아온 대답은 "몰라"
 
  다른 아이가 뜬금없이 "해바라기"
 
  아는 꽃 이름이 그것뿐인 것인지 생각나는 이름을 무심코 던졌는지 모르겠으나 그 자리에서만은 그때부터 꽃은 해바라기가 되었다. 해바라기에 벌이 날아든다. 꽃밭이 작아서인가. 날아든 벌도 작은 종류다.
 
  "와! 벌이다"
 
  "그러네" "쪼그매" "줄무늬야" "날개도 있어" "자꾸 날아오네. 어디서 오는걸까?" "꿀을 먹는가봐" "아니야 짝짓기를 도와주는 거야" 일 단락 된 듯 하더니
 
  "어! 개미도 있다" "줄을 지었네. 신기하다" "개미가 많다" 다같이 들여다본다. 어떤 말을 하려나 지켜보는데 그만 아이들의 눈에 들키고 말았다.
 
  갑자기 배꼽인사로 "안녕하세요" 하며 길을 비켜준다. 뒷걸음을 쳐서라도 좀 더 멀찍이 떨어져 있을걸 그랬다. 흩어지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내가 더 아쉬웠다. 아이들은 또 언제 저런 공부를 할까? 학교에서 책으로 배운 것을 눈앞에서 실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방해한듯하여 미안하다. 
 
  학교 앞을 지나칠 때 아이들 하교시간과 맞닿을 때가 있다. 아이들은 한꺼번에 교문을 나서지만 하나거나 어쩌다 둘이 짝을 지었을 뿐이다. 그것도 교문 앞에서 흩어진다. 보통은 코앞에 대기 중인 미니버스에 오를 때가 많다. 학원선생은 빨리빨리는 외치기 일쑤고 아이들은 쫓기듯 차속으로 사라진다.
 
  이삼십 년 전 내 아이들이 자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풍경만은 아니다. 그때도 교문을 나와 학원으로 향하거나 버스에 올랐다. 그렇지만 삼삼오오 어깨동무를 하고 몸 장난을 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지금보다 학생 수가 많아 어울리기가 좋아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들추자면 이보다 더 오래전 사오십 년 전에는 부락별로 모여서 등하교를 하던 때가 있었다. 깃발을 든 고학년을 선두로 줄을 맞춰 등교를 하고 운동장 한편에서 기다렸다가 단체로 하교를 하였다. 학교와 멀리 떨어져 위험해서이기도 했지만 뭉친다는 의미가 컸다. 언니가 동생을 챙기고 동생은 부지런히 따랐다.
 
  그때 학교에서 배우는 글자나 숫자이외에 다른 것들을 배웠는가 싶다. 일테면 개구리가 뛰는 방향을 가늠하는 방법이라든가 메뚜기는 업힌 것이 수컷이라는 둥, 곤충이나 풀꽃 이름은 굳이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런 지식이 돈벌이와 직결되지는 않아 소용될 때는 드물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직 가슴에 남은 걸로 보면 따뜻한 무엇이었던 듯하다. 
 
  아이들 기억에는 지금이 어떻게 저장될까. 지나는 바람처럼 잊히기도 할 것이고 어쩌면 생물학자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던 아이들은 꽃과 벌과 개미를 묶어보는 상생을 알았고 냄새를 맡았으며 그보다 친구와 함께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 사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더불어 살아야하는데에는 이견이 없다. 혹시 요즘 아이들은 그것을 배우지못하는건 아닌가 하던 우려가 사라진다. 일부러라도 멈추고 볼 일이다. 분명 흐뭇한 미소를 찾을 것이다.
수필가 김영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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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