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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화가 권용섭 씨, 우리땅 `독도`의 아름다움 붓끝으로 단숨에 피워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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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 작성일16-05-23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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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화가 권용섭 씨    "온몸으로 독도를 사랑하는 민족만이 독도를 내 땅이라 주장할 수 있다."
목숨 다할 때까지 독도 알리기에 앞장 설 것이라는 재미화가 권용섭씨의 말이다. 그는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다 2004년 홀연 미국으로 떠났다. 부인과 함께 그곳에서 화랑을 운영하면서 각종 피부색이 어울려 살아가는 그곳에서 독도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에게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안도감보다는 언제 또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이웃나라 일본 때문에 전 국민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는 땅덩어리다. 날선 공방을 벌이던 정치권도 유일하게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게 하는 한반도의 아픈 손가락이다.
 하지만 양은냄비처럼 쉽게 끓어오르고 식기를 일삼는 국민성 때문에 일본의 한 마디에 흥분하고 쉽게 조용해진다. 
 그는 "독도에 관한 생색내기식 규탄대회나 전시 행정은 그만두어야 한다고 한다." LA는 물론 외국 공관 앞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한글로 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데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다. 독도 이름 빌려서 자기 단체 알리려는 관행들은 한국 상황도 다르지 않다고 꼬집는다.
 "화가는 그림으로 그리고 가수는 노래로 알리고, 시인은 글로써 독도를 찬양하면 됩니다. 자연스럽게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해야 합니다." 
 독도 사랑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들어차 10년 넘게 독도를 그리고, 세계에 독도를 알려온 화가 권용섭화백(50)은 차분하고 신념이 강한 독도 알리미다. 민족주의도, 보수도 표방하지 않는 과묵한 사람이다. 
 "애국하기 위해 독도를 그린 것이 아니라, 아름다워서 그리다 보니 애국이 됐다"는 말이 명언처럼 마음에 와 닿는다.

                    ↑↑ 권용섭 작 '아름다운 독도'.     ■수묵속사기법의 대가
 그는 수묵으로 크로키 하듯 빠르게 그려내는데 능하다. 이른바 '수묵속사기법'이다.
 "독도는 반경 300m 안에 높고 낮은 봉우리와 관통석, 기암괴석 등 온갖 풍경이 다 들어 있습니다. 미적 가치가 굉장히 높지요."
 그는 수묵속사기법을 이용해 대형 광목에 독도를 30분 만에 그려내는 퍼포먼스를 펼치곤 했다. 머릿속에 사진처럼 저장된 독도 풍광을 화폭에 끄집어내 붓과 손으로 단숨에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그가 '수묵속사기법'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그려내는 건 "오랜 언론사 경험 덕분"이라고 한다. 신문 삽화나 스케치를 마감 시간에 맞추려다 보니 자연스레 손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력 없이는 되는 일이 있을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스케치를 하기도 했어요." 실제 그의 직업은 '오지여행 화가'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담아낸 그림은 스케치북 수백 여 권에 이른다.
 "주로 메모 형식으로 스케치를 합니다." '∧' '∂' 등으로 안개표시, 산 표시, 나무 표시 도 그만의 암호처럼 되어있다. 대신 특이한 모양의 빌딩이나 독도 등대처럼 기억하기 힘든 풍경은 자세히 그린다고…
 그의 수묵속사기법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99년 금강산 관광 때 였다. 당시 방송사 기자들은 촬영 금지 구역을 찍었다는 이유로 배에 억류됐다. 하지만 그는 화폭에 금강산의 풍경을 세세히 담아냈다.
 밥을 먹으면서도 그림 그리는 걸 보고 현대상선에서 전시회를 제안할 정도였다.  4일 동안 잠도 안자고 그린 그림이 무려 100여점에 이른다.
 동해 바다에는 아름다운 섬 독도가 우뚝 서 있다. 독도를 바라보면 갑자기 가슴 한쪽이 뭉클해짐을 느낀다. 넘실대는 푸른 바다, 그것은 생명의 바다다.
 권화백은 1977년 8월 호기롭게 독도 관광에 나섰다. 스무살의 화가 지망생은 친구와 함께 울릉도 여객선에 올랐다. 낭만과 혈기로 떠난 독도 스케치 여행.
 하지만 독도는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구경이나 해볼 요량으로 도동항 부두 옆 암벽에 갔고 서성대던 관광객 4명도 일행으로 합류했다.
 권화백은 독도가 가장 잘 보인다는 절벽으로 기어올랐다. 멀리서 보이는 건 독도 대신 검푸른 파도와 집채처럼 몰려드는 시커먼 물결.
 순식간에 밀어닥친 파도는 다른 일행들을 덮쳤고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난 참혹한 결과에 아연실색했다. 친구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함께 갔던 4명의 관광객은 모두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다.
 끔찍했던 기억도 세월과 함께 잊혀져 갔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2000년 초, 전국으로 스케치 여행을 다니던 그는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일본 모리 총리의 망언에 격분했다.
 그때부터 독도 풍경을 화폭에 담겠다고 결심했다. 얼마 후 정부에서 독도 관광을 허용한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독도 개방 첫날, 23년전의 아픔이 되살아나 울릉도에서 마음 졸이던 그에게 독도행이 이루어졌다. 혼자가 아닌 부인 여영난씨와 함께였다.
 30분 동안 독도 주변을 순회하는데 권화백은 스케치만 50여장을 했다. 이후 그는 4차례나 더 독도를 방문했고 온 몸으로 독도를 그렸다고 한다.
 정작 그림은 많이 그렸지만 보여줄 곳이 없었다. 경북경찰청과 경북도청에 부탁 했지만 일본과의 외교마찰을 걱정해 거절당한 그에게 경찰청 '포돌이 문화전시관' 개관 기념으로 '금강산전'을 하자는 제안이 왔다. 그는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하고 '독도 초대전'을 열기로 했다.
 전시회 중 행사 내용이 언론에 알려졌지만 다행히 전시회는 무사히 끝났고 그 전시를 계기로 해외 전시도 꿈꿨다. 그리고 이루어졌다.
 첫 해외전시회 장소는 브라질. 이후 미국, 필리핀, 독일 등 세계 10여개국 전시를 가졌다. 2003년에는 평양에서도 독도 전시회를 열었다. 잦은 해외 전시회 경비는 그림을 팔아가며 충당했다.
 권화백은 아예 미국으로 갔다. 가족들의 찬성하에 5년간 미국에서 20개 주 순회전을 결심하고 갔다고 한다. "6개월쯤 지나자 밑천이 바닥났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도움 받을 곳도 없었지요. 2005년 LA문화원에서 여는 '광복 60주년 기념전'을 위해 한국에 있던 집을 팔았습니다."
 "덕분에 생활비 부담도 덜었고, 1만5천달러가 넘는 전시회 비용도 감당할 수 있었지요. 한인단체와, 지역 정치권 인사까지 동참한 미주 최초의 독도 사랑운동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권 화백은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중학교 시절, 수묵화를 벽에 붙여놓고, 틈 나는 대로 따라 그렸다. 고교를 졸업한 뒤에는 잡지사와 신문사 편집부에서 일을 하며 미술계의 대가를 주제로 기획 기사를 쓰며 전국을 기행했다.
 운보 김기창 화백, 야송 이원좌 화백 등 수많은 스승들과의 인연도 맺게됐다. 운보 김기창화백은 권화백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했다. 학교에 가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필력이 죽는다며 미대에 가지 말 것을 권유했다.
 "'붓이 곧 선생'이라 하셨지요."
 누구의 제자여야만 위상이 서는 예술계에서 학맥도, 인맥도 없는 그는 죽을 각오로 그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끌어주면 그게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독학을 선택한 것이다.
 권화백은 1986년 안동MBC 개국 기념 전시를 준비하던 어느 날, 전시회를 돕던 아르바이트생 아내 여영난을 만났다. 1년 뒤 그들은 결혼을 했고 미술을 전공한 아내와 함께 화실을 냈다. 아내도 자연스레 독도 그림에 빠져들었고 함께 세계 순회전을 열었다. 2001년 4월에는 아내와 두 딸, 온가족이 독도스케치 탐방을 했고, 필리핀과 미국에서 가족전을 열기도 했다.
 미국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부부는 2013년 한국을 방문해 그해 5월 대구 가톨릭대학교 cu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권화백의 부인 여영난씨의 독도관련 전시였으나 권화백의 '평양기행전' 특별전을 함께 열어 대구 시민들에게 볼꺼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여씨가 독도그림을 그리게 된데는 남편의 영향이 컸다. 독도의 아름다움에 취해 독도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벌였던 여씨는 현재 미국 LA에서 각종 강연 등을 통해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은 물론 수묵화의 아름다움을 미국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지금까지 세계 각지를 돌며 담아낸 수 백 여 권의 스케치북을 작품으로 탄생시키기 위해 노력중이다. 
 글·사진= 권정호 보도사진가
 
 
  권용섭 화가
 1958년 경북 의성 출생. 한국화가. 독도화가.
 1999년 금강산 기행전을 계기로 많이 알려졌다. 금강산의 실제 모양을 독특한 '수묵속사기법'으로 그려낸 100여점의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미국, 일본, 호주, 브라질, 독일, 페루 등을 순회하며 독도 전시회를 열었고, 북한 전시회도 가졌다. 2004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주 기행을 하며 독도 순회 전시를 하고 있다. 향후 한국에서 독도미술관을 여는 게 꿈이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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